♣ 조선조[숙종]때 나라에 큰 흉년이 든 적이 있었다. 흉년이 들었으면 더 검소하게 아끼며 살아야 할 텐데,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쌀로 술을 만들어 마셨다. 그리고 홧김에 술을 마시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.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만들어 마시니까 어진 임금[숙종]이 적잖게 걱정이 되었다. 그래서 “그 어느 누구도 쌀로 술을 빚어 먹지 말라”고 명을 내렸다. 그리고 왕 자신도 식사 때에 약으로 한 잔씩 드시던 반주도 다 끊었다.

그런데, 고위직 대신들이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신다는 말이 가끔씩 들려왔다. 그래서 하루는 변복을 하고는 사실을 확인하러 궁 밖으로 나갔다. 혼자 한양을 벗어나 북쪽으로 올라가 고개를 넘으니 강이 있었다. 강을 건너기 위해 뱃사공의 집을 찾았더니 마침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. “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 한 술만 주시오”라고 했더니 밥 한 그릇을 맛깔나게 비벼 주었다. 맛있게 먹으면서 제사를 지내면 술이 있을 텐데, 목이 컬컬하니 술 한 사발만 주실 수 있겠느냐고 넌지시 떠보았다. 그랬더니 그 뱃사공이 화를 벌컥 내면서 “아니,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? 나라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고, 임금님께서도 그렇게 좋아하시는 반주도 안 드신다는데,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거요? 임금님의 뜻도 모르시오? 그 따위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.”라고 말하는 것이었다.

[숙종]은 사공에게 혼이 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.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는 벼슬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, 밥을 다 먹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. “사공, 내가 이 강을 건너야 되는데, 좀 건네 줄 수 있겠소?” 사공은 흔쾌히 대답했다. “예, 모셔 드리지요. 그런데 앞으로 술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.” 강을 건너면서 [숙종]임금이 말했다. “오늘 너무 고맙게 대해 주어서 내가 한양에 가면 잘 아는 아주 높은 분에게 부탁하여 벼슬을 내리고 싶은데, 무슨 벼슬을 원하오?” 그러자 사공이 “사람 놀리지 마시오. 나 같은 주제에 무슨 벼슬을 하겠소? 뜻은 고맙게 받겠소.”라고 하며 거절했다. 그러자 [숙종]임금이 새 한 마리를 그려 뱃사공에 보여 주며 “모월 모일 모시에 과거가 있을 터인데, 그때 꼭 오시오. 그러면 시험관이 이런 새 한 마리를 보여 줄 거요. 그러면 무조건 ‘붕’하시오. 그러면 벼슬을 얻을 것이오.”라고 말했다. 그리고 임금은 궁으로 돌아왔다.

약속한 그 날이 되었다. 사공은 망설이다가 호기심으로 시험장에 가보았는데, 정말 시험관이 새 한 마리를 그려서 보여 주며 “이것이 무엇인가?”라고 묻는 것이었다. 그런데 사공이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“붕”이라는 말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. 그래서 그만 “부자”라고 대답했다. 그러자 시험관이 “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말해 보시오.”라고 말했다. 생각나지 않았던 사공은 이번에도 “부자”라고 말하고 말았다. 그래서 숙종 임금이 벼슬은 내리지 못하고, 부자가 되도록 큰 재산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.

그때 그 사공이 “붕”만 잊어버리지 않았어도 큰 벼슬을 얻었을 텐데 말이다.